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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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2017) - 전쟁 영화에 대한 놀런 감독의 색다른 연출

Dunkirk (2017)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Christopher Nolan)
작가: Christopher Nolan
출연: 핀 화이트헤드 (Fionn Whitehead), 아뉴린 바나드 (Aneurin Barnard), 마크 라이런스 (Mark Rylance), 톰 하디 (Tom Hardy),
잭 로우든 (Jack Lowden), 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 제임스 다시 (James D'Arcy), 킬리언 머피 (Cillian Murphy), 해리 스타일스 (Harry Styles) 등
상영시간: 106분

(다음영화, IMDb 페이지)


이하 내용은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놀런 감독은 제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감독입니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인터스텔라(2014)가 상당히 유명하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취향에 매우 들어맞는 작품은 치열하고 복잡다단한 플롯 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매우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주)는 인셉션(2010)이나 프레스티지(2006), 메멘토(2000) 등의 작품이었죠 (세 작품 모두 막상 블로그에 감상문은 쓴 적이 없군요;;;) 그가 들고 나온 전쟁 영화는 과연 어떨지, 상당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안고 오랜만에 극장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놀런 감독답게 뭔가 좀 색다르긴 하더군요.
온통 피범벅된 사람들이 팔다리가 날라가고 피터지고 으깨지고 박살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전쟁터를 그린 영화가 무려 PG-13 (미국 등급, 13세 이상 관람가)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a 이 영화에서는 피가 나오는 장면 자체가 거의 없고, 사람들이 죽는 장면도 잔인함을 극소화하고 화면 밖에서 죽는 것이 태반입니다. 잔인한 장면을 잘 못 보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든 전쟁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 죽음이 올 지 모르는 전장의 긴장감과 공포가 전혀 줄지 않고, 음악이나 효과음 등의 다른 장치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서 그 긴장감은 오히려 배가됩니다.

이런 잔인하지 않은 연출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평에 대해 놀런 감독은 "관객이 잔인한 장면에서 눈을 돌리느라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된 것이라 응답했다고 합니다.



이하는 그냥 생각 가는 대로 영화에 관련된 잡설들을 늘어놓아 봅니다.


- 역대 놀런 감독의 극장용 영화 중 두 번째로 짧은 러닝 타임이라 합니다. 가장 짧은 것은 69분의 펄로잉(Following, 1998)이죠. 하지만 놀런 감독의 영화가 으례 그렇듯이, 늘어지는 부분이 거의 없이 관객을 집중하게 하는 이야기 능력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나온 것 같네요.


- 누가 메멘토 만든 감독 아니랄까봐 이 작품 역시 시간을 갖고 묘한 편집을 하는 장난질을 쳐 놓았더군요. 영화에 나오는 세 가지 이야기는 각기 서로 다른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입니다 (잔교: 일주일, 바다: 하루, 하늘: 한시간). 영화 시작할 때에 자막으로 나오는 내용이지만, 사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보는 순간 이게 무슨 뜻인지 알기 쉽지 않죠;;;

각각의 이야기 내에서는 시간 순으로 내용이 전개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로 전환되면 이제 상대적으로 다른 이야기의 어디에 해당되는 시간인지는 알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에 공통되는 사물이나 사건, 인물들에 대해 간혹 더 미래의 상황이 다른 이야기에서 먼저 나오는 경우가 생기죠.

말로 적어 놓으니 무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세 이야기가 내부적으로는 시간순이라는 것을 염두하고 보면 다행히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과연? --a).


- 영화의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주는 또 한 가지는, 등장 인물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상황이 거의 없다는 점도 한 몫 한 듯 합니다. 영화 관련 배역이나 시놉시스 등에 나오는 이름들이, 실제 영화에서는 아예 안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설상가상으로, 전장에서의 여러 상황 덕에 병사들의 얼굴의 일부가 자주 가려져서, 각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데에 더욱 큰 어려움을 줍니다.


- 놀런 감독은 이 영화를 현실성 넘치게 연출하기 위해, 실제 전투기를 타기도 하고, 실제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기도 했다고 합니다. 항해는 19시간이 걸렸다고 하네요.


- 놀런 감독 영화 반복 출연자들이 역시나 좀 보이네요 ^^ 그나마 얼굴이 좀 나오는 킬리언 머피(떨고 있는 병사 역)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크레인 박사/스케어크로우 역)와 인셉션(로버트 피셔 역)에 나왔고, 얼굴이 거의 안 나오는 톰 하디(전투기 조종사 파리어 역)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베인 역)와 인셉션(임스 역)에 등장하였죠. 파리어는 거의 영화 내내 비행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만 보이는데,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을 연기할 때도 그랬지만, 이 즈음 되면 얼굴 반만 나오는 역 전문 배우라 해도 될 지도요;;;

그리고 거의 고정 출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마이클 케인 경은 이번 작에 목소리로만 찬조 출연합니다. 쥐도새도 모르는 사이 격추당해 버린 전투기 편대 대장의 목소리죠.
놀런 감독의 케인 경에 대한 애정을 한 번 확인해보자면... 인터스텔라(브랜드 교수 역), 다크 나이트 시리즈(알프레드 집사 역), 인셉션(마일스 역), 프레스티지(커터 역)까지, 긴 협업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 톰 하디가 연기한 파리어 역에 대해 조금 더 잡담을 해 보자면, 파리어는 돌아갈 연료를 아끼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철수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적 전투선을 격추시키는 엄청난 활약을 하고, 막상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어 어떻게 될 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운명에 처합니다. 반면 잔교 이야기의 주인공 격인 토미는 줄서서 기다리라는 상부의 명령을 듣지 않고 온갖 잔꾀를 부리며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으려 했는데 실제로 살아남습니다;;; 전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일까요?


- 영국인들은 역시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차를 마시는군요. 하핫;;;


- 결론적으로, 놀런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소재를 사용하였지만, 그 와중에도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연출들을 넣어 무게감을 살짝 줄이고, 치밀한 스토리를 통해 관객을 흡입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P. S. 지금은 상당히 시들해졌지만, 영화 dvd를 꽤 열심히 모으던 시절에 사 둔. 제가 들고 있는 놀런 감독 영화들입니다.


이 중 가장 여러 번 본 영화는 단연 프레스티지죠. 보고 또 돌려 봐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양파같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마술 쇼와 달리, 트릭(?)을 알고 보면 오히려 더 재미있는 작품이죠.

P. P. S. 이하 내용은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입니다.
토미의 행적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면...
도심을 걷다가 독인군의 총격 -> 동료들은 전부 죽고 총도 잃어버리고 혼자 해변에 도달 -> 철수선 타려 하나 줄서라고 함 -> 들것을 들고 의무병인 척 배를 타려 하나 다시 내리라고 함 -> 격추된 배에 있던 의무병인 척 하고 철수선 탐 -> 철수선 격추당해 배에 끌려 다시 해변으로 돌아옴 -> 폐기(?)된 민간 유조선에 몰래 탐 -> 독일군 총격에 침수되어 바다로 뛰어듬 -> 유조선에서 나온 기름에 범벅됨 -> 비행기 폭파로 기름이 다 불붙기 전 극적으로 민간선에 구조됨 -> 무사히 귀국

살아남겠다는 일념 하에 무려 네 번이나 배를 갈아탔는데 배가 세 번 가라앉고, 숱한 죽을 위기를 넘기는 우리의 토미! 그는 억세게 재수가 없는 놈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영국으로 살아 돌아온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일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토미의 상황과 비교해 보자면, 영화 막판 모 병사는 그냥 퍼져 자다가 무려 간부선에 타고 별 탈 없이 탈출하기도 하죠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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