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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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폴 챕터스 결말 감상

(앞 부분은 스포일러 전혀 없습니다.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

1999년 출시되었던, 롱기스트 저니 (The Longest Journey)에서 시작되었던 긴 이야기가, 2016년, 무려 17년 후, 드림폴 챕터스 (Dreamfall Chapters: The Longest Journey, 이하 챕터스)의 5번째 챕터가 출시되면서 드디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참 오래 기다렸군요.

개인적으로 참 많은 애정을 갖고 있던 시리즈였고, 2편이었던 드림폴(Dreamfall: The Longest Journey, 2006, 이하 드림폴)에서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을 채워 줄 후속작을 10년간 기다려 왔던 팬으로서, 참 긴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챕터스의 마지막 장면은 이전 작에서 나왔던 **스포일러 심의삭제** 장면과 이어지면서, 커다란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오래 기다린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작품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면 참 훈훈하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아니, 챕터스는 오래 기다린 만큼 늘어난 엄청난 기대감에 아쉽게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드림폴의 엔딩을 보았을 때의 감동의 1/10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장점부터 언급하고 넘어가면요, 챕터스의 스크린 샷의 매력은, 이전 작들이 전혀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멋진 3D 모델들과 광원 효과가 난무하는 유니티 엔진은 17년 전 1편의 2.5D 그래픽이나 10년 전 2편의 허술한 3D 기술과 정말 시각적으로 비교도 안 되게 멋진 그래픽을 선보입니다. 이거 하나는 인정하도록 하죠.

하지만... 단지 멋진 겉모습만으로는 커버가 안 되는 여러 단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스토리에 연관된 것으로, 다량의 스포일러 없이는 상세히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요, 그래도 게임을 아직 안 하신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 없이 몇 가지 적어 보자면요:

- 움직이지 않을 때는 훌륭해 보이는 그래픽이지만, 애니메이션의 품질은 매우 떨어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어설픈 부분이 많습니다.
- 챕터스의 마지막 제 5 챕터는 '단지 설명을 위해' 억지로 밀어 넣은 부분이 너무 많음: 뻥 좀 섞어서, 5챕터의 절반은 로딩 스크린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_- 저의 경우 ssd에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딩이 참 지겹게 느껴졌는데, 느린 하드를 장착한 시스템에서의 로딩 타임은 상상이 잘 안 됩니다ㅠ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존하는 문제 해결은 상당한 실망감을 줌: 저에게 가능 큰 실망을 안겨 준 부분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스포일러 섹션을 참조하세요.


전체적으로, 챕터스는 제게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제 기대치가 애초에 너무 높았던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 해도 전작들에서 느꼈던 감동에 훨씬 못 미치는 평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서 부터는 상당히 많은 스포일러를 이야기합니다. 게임을 이미 플레이 해 본 분이나, 플레이 할 생각이 없는 분들만 아래 내용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챕터스의 선택지 시스템: 챕터스는 중간중간 여러 분기점이 있어 플레이어에게 많은 선택을 하게 합니다. 선택에 따라, 이후 이야기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야기될 것을 강조하며, 신중히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데요, 끝까지 해 본 지금 뒤돌아 보면, 큰 줄기에 별 의미가 없는 선택지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선택지 시스템은 텔테일 사(Telltale Games)의 역작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 시리즈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한 바 있는데, 챕터스는 이를 흉내내긴 했습니다만 선택의 결과가 가져오는 감정의 무게감은 거의 살리지 못했습니다. 참 아쉬운 부분이네요.


2. 밋밋하고 뜬금 없는 캐릭터들: 키안 알바네(Kian Alvane)! 2편인 드림폴에 등장했을 때도 전혀 비중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고 왜 존재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였는데, 왜 주인공이 된 챕터스에서도 여전히 밋밋하고 재미가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동성애자라는 묘한 설정은 그냥 살짝 언급만 하고 넘어가고 그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 전혀 활용되지 않으며, 대체 왜 넣은 건지를 모르겠습니다.

키안이 밋밋한 캐릭터의 대표라면, 갑자기 악당이 되어 돌아온 브라이언 웨스트하우스(Brian Westhouse)는 뜬금 없는 캐릭터의 대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 내 모 처에서 그 과정을 (역시 뜬금 없이!) 보여주는데, 과정 자체는 매우 상세하게 보여주지만, 슬프게도 전혀 공감은 안 갑니다-_-


3. 무엇보다 저의 가장 큰 불평은 과하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존하는 문제의 해결법. 콕 짚어 말하면 바로 사가(Saga)의 존재겠죠. 그녀가 에이프릴(April Ryan)의 환생이라는 것은 상당히 명백하게 드러나 있지만, 에이프릴이 왜 사가로 환생하게 된 건지, 사가의 부모는 누구고 어떤 존재인지, 어디서 온 건지, 어쩌다가 이 집에 살게 된 건지, 왜 차원 여행을 늘 떠나는 건지, 엉클 갈라스(Uncle Galath)는 대체 누구인지, 사가는 어떠한 연유로 적절한 때에 등장하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건지, 그녀가 이야기하는 '이야기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건 무슨 뜻인지, 사가는 어떻게 그 정해진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건지, 사가는 무슨 능력으로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건지, 아이고 헥헥 숨차라 =_=
여튼! 저는 게임 내에서 사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설명이 안 되고 그냥 끝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정말 불친절의 극치이며, 아무런 논리적인 배경 설명 없이 그녀는 단지 갑작스레 튀어나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사라집니다. 무슨 허무개그도 아니고, 정말 뭡니까 이게!

사가로만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단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운 좋은 기적'은 또 있습니다. 바로, 사가가 조이(Zoe Castillo)와 만나기 직전 조이가 꿈 속(?)에서 보게 되는 특집다큐 "그것이 알고 싶다: 그놈은 왜 악당이 되었나?" 조이는 정신을 잃은 직후 평범한 중년 아저씨 브라이언이 사악한 악당 두목 예언자(The Prophet)가 되는 전 과정을 상세히 감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그 악당을 처치할 방법까지 말이죠. 왜냐고요? 글쎄요, 게임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렇게 알려주지 않으면 주인공들이 악당을 이길 방법이 전혀 없으니까? 하아 진짜...

여하간, 주인공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고 공감도 안 되는 갑작스런 기적들로 인해 이기게 되고, 이런 과정을 본 플레이어들이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닐까요? 마지막 주인공들의 승리는 이 때문에 정말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 우선적으로는 3번에서 살짝(?) 언급한 사가. 그녀에 대해서는 그녀가 에이프릴의 환생이며 알바네 여사(Lady Alvane)라는 것을 빼면, 정말 거의 모든 부분이 설명이 안 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챕터스의 이야기는 키안과 저항군이 마큐리아(Marcuria)에서 승리한 부분에서 끝나고, 이후 키안이 본국으로 돌아가 사가의 도움을 받아 내전을 통해 종국에는 왕이 되는 이야기는 그냥 커트신 하나로 보여주기만 하죠. 1편에서도 이야기 되었듯이 궁극적으로 스타크(Stark)와 아케이디아(Arcadia)는 하나의 세계로 통합이 되는데, 그 이야기 역시 전혀 설명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짧은 한 개의 게임에서 다루기엔 너무도 많은 이야기라 힘든 점도 분명 있겠지만, 너무도 많은 부분을 (특히 사가에 대한 이야기를) 비워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스포일러 파트 끝)




그래서 결론적으로, 에이프릴과 조이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고, 크로우(Crow) 등 보고 싶던 인물들을 다시 만난 것은 참 좋았지만, 이야기의 마무리 자체는 그다지 만족스럽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네요. 좀 더 잘 다듬어진 작품이었더라면 싶은 아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 여정에서 에이프릴, 조이, 그리고 크로우와 함께 울고 웃던 장면들을 기억하며, 마음 속의 기나긴 여행의 마무리를 해 볼까 합니다. Adieu and farewell to the Longest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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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를 따라가는 어드벤쳐 게임의 특성 + 스팀 어치브먼트 달성을 위한 반복 플레이로 무려 20위까지 올라왔네요. 상세한 엔딩에 대한 감상은 여기서 길게 늘어놓을 것 없이, 다른 글에 이미 자세히 적었으니 이쪽을 참조하시면 되겠고요, 짧게 요약하자면, 저에게 있어서는 그 동안 쌓인 엄청난 기대감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 큰 실망감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나스플돌 ... more

덧글

  • ㅇㅈ 2017/12/14 11:57 # 삭제 답글

    오늘 게임을 깨고 남들의 리뷰글을 뒤적거리다 여기 왔습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3편은 1편과 비교해 테마나 서술 형식에서 차이가 크다고 느껴졌습니다. 1편에서 에이프릴 라이언은 웬만하면 자신의 기지와 위트로 상황을 해쳐나갑니다. 라이언이 받은 도움은 도망칠 때 알바네 여사가 차원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정도인데, 3편에선 이런 식의 조력이 너무 간편하게 우연과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어와 일이 술술 해결됩니다. 스토리 상의 긴장감이란 게 없었어요. 사가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게 운명이고 그렇게 될 일이라고 말해버리니까.
    '운명'이나 '이미 예정된 일'에 대한 태도도, 라이언은 운명에 끌려다니면서도 번번히 왜 이런 일에 휘말렸는지 모르겠다, 운명 따윈 상관하기 싫다며 화를 내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3편의 키안,조이,사가 모두 운명이라는 말에 대단히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키죠. 2편이 던진 떡밥은 물론 다 회수되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재미가 없었습니다;;
  • anakin 2017/12/21 06:57 #

    ㅇㅈ 님 // 저도 매우 동의합니다. 1편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이 있으면서도 주인공의 공허한 마음이 너무 공감되어 슬펐는데, 3편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는 말씀이 참 와 닿네요. 3편의 스토리는, 마치 다른 사람이 영화를 보고 와서 영혼 없이 줄거리만 쭉 읊어주는 것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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