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 Club (1999)
감독: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주연: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 브래드 피트(Brad Pitt), 헬레나 본햄 카터(Helena Bonham Carter)
러닝타임: 139분작년 말에 이탈리안 잡(The Italian Job, 2003)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동생과 이야기를 하던 중, 동생은 자신이 에드워드 노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튼이라는 배우를 전혀 생판 모르던 저였기에, 저는 이탈리안 잡에서 '그냥 악당으로 나온 배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저에게 권해주었던 영화가 바로 이 파이트 클럽이라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에드워드 노튼이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 아는 상태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백지 상태로. 이렇게 이 영화를 접했다는 사실이 지금은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는지 모릅니다. :)
경고! 누르면 Spoiler space가 나옵니다->이 영화를 단순히 '반전' 영화로만 아시는 분들도 간혹 있으시더군요.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사실 이 반전은 꽤나 충격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의 경우, 영화 내내 '저거 뭔가 이상한데',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은 계속해서 하고 있었지만 그 둘이 한 사람일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튼이 타일러를 쫓아다니다가 목 깁스를 하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 -- 노튼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데?" 깁스맨 "타일러 더든이요." -- 그제서야 "아하~"하고 깜짝 놀랐죠. :)
하지만 다행히도 이 영화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나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5)처럼 반전에 크게 의존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둘의 관계가 드러난 이후에도 러닝 타임이 꽤나 많이 남아있죠. :)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는 이상한 분위기에서 흘러나오는 전자 음악, 그리고 노튼의 대사, "내 인생의 참 이상한 시기에 나를 만났군.. (You met me at a very strange time of my life..)" 이 장면의 절묘한 환상적인 느낌은 오랬동안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큰 주제는 -- 제목에서 연상하기 쉬운 폭력에 대한 숭배가 절대 아니라 -- 바로 현대의 물질 문명, 소비 문화에 대한 비판이겠죠. 노튼의 배역은 영화 내내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IMDb에서는 그를 내레이터라고 호칭합니다) 그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현대의 소비 문화의 노예라는 것은 알기 어렵지 않죠. 그에게 있어 소비는 자신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명백하게 이야기하죠. '나는 가구를 살 때에 어떠한 가구가 나란 사람을 명확히 정의해 줄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리하여 그의 집에는 고급 메이커의 명 가구들이 들이차고, 비싼 깔개, 조명, 싱크대, 심지어는 그의 찬장 안의 그릇들까지도 최상품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먹을 음식을 살 돈은 없어 냉장고 안에는 조미료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 대해 타일러는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들이 당신을 가질거야. (What you own will own you.)" 정말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많은데, 많은 부분이 원작 소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네요.
영화의 카메라워크 또한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영화의 처음 시작에서 노튼의 머릿속을 돌아다니다가 밖으로 빠져나와 총을 보여준다든지 관망대에서 지하로 순식간에 내려가서 트럭을 보여주고, 다시 옆 건물들의 지하실을 보여 주는 장면, 쓰레기통 속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카메라의 이동 등은 개인적으로 무척 신기하더군요. :) 그리고 타일러가 처음으로 노튼에게 자신을 때려달라고 하는 부분에서의 순간 멈춤, 그리고 타일러에 대한 설명 장면에서 관객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노튼의 모습은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타일러는 계속 노튼을 의식하고 있죠. ("이봐, 쳐다보면 안나온다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에드워드 노튼에 대해 정말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영화 내내 끊이지 않는 그의 차분한 나레이션과 몸을 던지는 연기는 확실히 이탈리안 잡에서 자신의 금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비열한 악당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더군요. 한 영화만 갖고 배우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정말 안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브래드 피트의 호쾌하고 자유스러운 모습도 정말 멋졌고요. 특히 술집 주인에게 얻어터지면서 웃는 웃음소리는 카리스마의 절정이었습니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정말 이 사람이 빅 피쉬의 그 마녀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달라 보이더군요. 어딘가 불안정하고 부족한 모습, 하지만 또 나름대로 당당하고 자유로운 모습이 그녀의 쾡한 눈과 약에 취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묘한 매력을 자아냅니다.
보너스 스포일러를 보시려면 클릭 ^^ ->이 영화는 정말 여러번 볼 가치가 있는 영화 같습니다. 보면 볼수록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노튼 = 타일러에 대한 힌트들이 계속 눈에 띄죠. 그 중에서도 조금은 결정적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적어봅니다.
* 타일러가 한 컷씩 잠깐 등장하고 사라지는 장면이 다섯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복사기, 의사와 대화하는 복도, 고환암 그룹 미팅, 말라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그리고 호텔의 TV 화면입니다.
2004.11.24 오전 9:09 수정 - lunamoth 님의 스크린 샷 링크 추가합니다.
타일러가 한 컷씩 등장하는 장면
호텔 TV 화면에 나오는 타일러의 모습
호텔에서의 등장은 다른 4번의 한 컷 등장과는 약간 다르군요.* 공항에서 노튼이 '그렇다면 다른 사람으로 깨어날 수도 있을까?'라고 할 때에 카메라가 타일러를 따라갑니다.
* 타일러를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둘은 같은 가방을 갖고 있습니다. 타일러는 자신의 가방을 열지만, 노튼은 자신의 가방을 열지 않습니다.
* 노튼과 타일러가 버스를 타는 장면에서 그 둘 사이를 한 사람이 지나가는데 타일러는 그냥 밀어버리고 노튼에게는 "Excuse me"라고 하며 지나갑니다.
* 파이트 클럽 모임에서 주점 주인이 부하와 함께 나타나서 타일러를 때려눕힐 때, 부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며 물러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때 노튼은 입구 쪽의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데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 노튼이 상사의 방에서 스스로를 때려눕힐 때, '타일러와의 첫 싸움이 생각나는군'이라고 합니다.
* 중간에 비 오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날 때에, 타일러가 운전석에 앉아 있고 노튼은 조수석에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나서 차가 전복되었을 때에, 타일러가 조수석에서 기어 나와 운전석의 노튼을 차 밖으로 꺼냅니다.
* 노튼이 자신과 타일러가 같다는 것을 알기 이전에도 '혼란 프로젝트' 폴더를 들고 다니는 장면에 두어 번 있습니다.
아래는 힌트는 아니지만 제가 정말 웃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
* 영화 가장 처음에 타일러가 노튼의 입 안에 총을 넣고 소감을 묻는 장면이 있죠. 타일러가 총을 꺼내자 노튼은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 (I can't think of anything)"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에 다시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는 "아직도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 (I still can't think of anything)"이라고 대답이 바뀝니다.
덧글
라스트씬의 부조리함이 인상깊었었는데..
힌트 부분은 의외네요. 다시 한번 주의깊게 봐야겠습니다.
아울러 예전에 찍은 스샷 수동 트랙백합니다 :)
http://lunamoth.biz/index.php?pl=299
http://lunamoth.biz/index.php?pl=140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브래드 피트의 그것도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lunamoth 님 // 우앗 제가 찾던 바로 그 스샷이군요 감사합니다^^ 감독 인터뷰도 잘 보았습니다!
dana 님 // 예, 저도 세 명의 메인 배우들이 각자 정말 개성있고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멋지죠 :)
염맨 님 // 말씀하신대로 영화의 코믹 터치 또한 보통이 아니죠^^ 소설을 영화화 한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닐텐데, 이 영화는 정말 멋지게 성공한 것 같아요.
렛츠트라이 님 // 저도 동감합니다 :) 피트의 연기가 어설펐다면 아마도 영화의 밸런스가 크게 흔들렸겠죠. 노튼 - 피트의 캐릭터간의 대조가 영화의 큰 축이니까요.
'반전'이라는 요소를 굉장히 좋아했던 저로서는. 기억에서 빠뜨릴 수 없는 영화네요.-비록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