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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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35 (1822)
* 작곡: 표트르 일리히 차이코프스키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 연주: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1901~1987) 프리츠 라이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노라면 예전 우리 집에 있던 전축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요즘이야 음악 매체가 CD에 거의 국한되어 버려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집들이 상당히 많았던 거 같다. 가장 위에는 턴테이블, 중간에는 라디오와 테이프 덱, 그리고 가장 아래쪽에 위치했던 CD 플레이어... 양쪽에 서 있던, 당시 나의 키와 크게 차이나지 않던 커다란 스피커 둘.

어머니는 음악을 많이 좋아하셨기에 그 전축에 음악을 자주 틀어놓으셨다. 덕분에 음악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어린 나도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여러 장르 중에서 특히 클래식을 많이 들었다. 당시는 클래식이란 정말 나에게 알 수 없는 음악이었다. 제목도 '무슨무슨 협주곡', '교향곡 몇 번', 이런 식의 정말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만 있을 뿐이었고, 길이는 또 왜 그렇게 긴 건지... 그래서 멜로디만 귀에 익히고 제목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그냥 감상할 뿐이었다. 멜로디를 들으면 '아 이거 그 때 들었던 곡이네' 정도, 제목도, 작곡가도, 연주자도 몰랐다. 그냥 들어서 좋으면 그걸로 만족했다.

기억 속의 멜로디들에 제목을 하나씩 대응시켜 나가기 시작한 것은 내가 나이를 훨씬 더 먹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도 훨씬 더 많이 쌓은 후였다. 내가 듣고 싶은 곡들을 찾아 음반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던 때이고... 그래도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기에, 어릴 적의 기억에서 건져낸 이 곡들이 나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당연하게 생각된다. 예전 전축에 있던 클래식 음반들은 내가 또 추가로 구입한 음반들과 한데 섞여져 구분이 힘들게 되었지만, 예전의 곡들은 항상 나에게 그저 음악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닌, 어릴 적의 감흥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어느 날 섞여있는 음반들을 뒤적이다가 문득 내 눈의 띈 이 음반... 당시에는 내가 왜 이 곡을 잊고 있었을까 하는 의아함이 들었다. 어릴 적에 제일 좋아하던 곡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파아란 바탕에 창백한 흰 손이 바이올린을 감싸쥐고 있는 사진... CD 케이스를 열어보았다. 예전처럼 빨간 테두리가 쳐진 CD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함... 음반을 틀어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열정적인 바이올린의 소리. 하이페츠 연주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때로는 깊이 있는 무거운 톤으로, 때로는 이 음 저 음으로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다람쥐 같은 음색으로, 또는 애절한 여린 고음으로 울리는 그의 바이올린은 아직도 감동적이었다...

- 이상 저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회상이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생애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작곡가로 어릴 적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규적인 음악 교육은 받지 않으며 법률 학교를 졸업하여 잠시 관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의 길은 음악에 있었는지, 1860년 안톤 루빈스타인 주재의 음악 교실에 입학하였다가 그곳이 러시아 음악원으로 개편되며 그곳의 1기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은 음악의 외길로 계속되게 됩니다.

러시아는 당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서유럽에 비해 그다지 강대국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그다지 내세울 것 없이 서유럽의 낭만주의 사조를 따라하는 실정이었지요. 그 와중에 러시아 5인조 등의 국민악파 사조가 유행을 하게 됩니다. 국민악파란, 당시 북유럽과 동유럽 여러 국가에서 유행하던 사조로,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국가들에서 독립 운동의 성행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 나타나게 된 것으로, 주로 자국의 전통적인 음악적 특성을 음악에 많이 반영하곤 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러한 두 가지 사조의 성향을 동시에 띄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낭만주의적인 성향이 무척 강하지만, 또 러시아의 향취가 깊이 베어나고 있기도 하죠.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6곡의 교향곡(이 중 6번 '비창'이 제일 유명합니다. 2악장의 메인 테마가 만화 스머프에 삽입되었죠)을 들 수 있고,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또 발레 모음곡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호두까기 인형' 등이 유명합니다.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죠.


근데 하이페츠는 누구죠?
야샤 하이페츠(1901~1987, 혹은 1899년 생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는 20세기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러시아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는 3세 때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잡아 평생 바이올린과 함께 했습니다. 9세 때 헝가리 출신의 레오폴드 아우어의 제자가 된 그는 신동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1917년 10월 27일, 그의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의 연주는 일대 하나의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같은 해 11월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자 그는 그대로 미국에 눌러 앉게 되며, 192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여 죽을 때까지 미국에 살게 됩니다.

그의 연주는 인간이 갈 수 있는 '완벽'의 경지에 최고로 가깝게 간 연주라고 평가됩니다. 악보상의 단 하나의 음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음악으로 들려주는 그의 연주, 그러면서도 그 연주는 단지 악보의 재생이 아니며, 폭넓은 표현력과 해석, 그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색을 보여줍니다. '신이 빚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 질 만합니다. 그와 동시대의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가리켜 하이페츠의 그늘에만 존재할 수 밖에 없던 '불쌍한' 자들이라고 평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그의 연주를 듣고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을 박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하며, 버나드 쇼는 하이페츠에게 편지를 보내 "인간이 그렇게 완벽한 연주를 하면 하느님의 시기를 사서 요절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며 그에게 저녁에 잠을 자기 전에 기도 대신 아무 곡이나 서툴게 연주할 것을 부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그는 1987년 긴 생애를 마치고 세상을 떠납니다. 과연 버나드 쇼의 부탁을 정말로 행한 것이었을까요?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세상에 등장하기까지...
차이코프스키는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이는 3대 바이올린 협주곡(베토벤, 멘델스죤, 브람스)에 이어 가장 인기 있고 자주 연주되는 협주곡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곡이 처음 발표되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무척 힘든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1878년 이 곡을 완성하여 당시 바이올린의 거장이었던 아우어에게 헌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곡의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본 후 '기교적으로 연주 불가'로 판정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솔로 바이올린을 작곡하는데 많은 조언을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코테크조차도 그 곡을 연주하는 것을 꺼렸다고 합니다. (이 코테크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있어 마치 브람스의 요아힘과도 같은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4년여 간의 세월 동안 이 곡은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 곡이 드디어 1881년 초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가 연주하기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이 곡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계속 반복하여 연주해도 절대로 질리지 않으며, 이는 이 곡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브로드스키의 말입니다. 그러나 이 때도 당시 공연의 지휘를 맡았던 한스 리히터도 곡의 연주를 꺼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결국 초연을 했지만... 관중들은 크게 야유를 보냈으며, 악명 높은 비평가 에두아드 한슬릭은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고 합니다. "바이올린은 더 이상 연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리저리 잡아채졌으며, 갈기갈기 찢겼고, 멍들 정도로 두드려 맞았다... 우리는 천하고 품위 없는 얼굴만 봤고, 거친 고함 소리만 들었고, 싸구려 술 냄새만 맡았다. 프리드리히 피셔는 짜임새 없는 그림을 평할 때 '보고 있노라면 악취가 나는 그림이 있다'하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음악 중에서도 악취가 나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혹평에도 불구, 이 곡의 매력을 굳게 믿었던 브로드스키는 이 곡을 널리 알리는데 굉장한 노력을 하였고, 차이코프스키도 이 곡을 다시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이 협주곡은 널리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곡을 거부하였던 아우어도 결국은 연주를 하였으며, 그의 신동 제자였던 하이페츠에게도 이 곡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늘날에는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기교적으로 결코 쉬운 곡은 아니랍니다. :)


현재의 이 곡은...
이 곡은 2003년 초에 개봉했던 바이올린 신동에 대한 중국 영화 "투게더"에 아주 중요한 곡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바이올린 콩쿨에 대비하여 연습하는 곡이 바로 이 곡의 3악장이죠. 힘이 넘치는 피날레 부분을 영화의 결말부에서 정말 잘 활용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힘껏 내리긋는 활 동작과 힘이 넘치는 협주곡의 조화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이 영화 이외에도 이 곡의 1악장은 예전 모 화장품 광고에도 등장한 적이 있고, 또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신의 연주 레퍼토리에 꼭 보유하는 곡 중 하나이므로 분명 귀에 익은 음악일 것입니다.

덧글

  • mayura 2004/11/05 02:26 # 답글

    ^_^ 역시 전 anakin님의 음악이야기가 좋아요.
    저에게 있어 어릴때부터 세뇌비슷하게 작용했던 음악은 라벨이군요;;(아니 정말 최근 깨달았어요) 막내 작은아버지께서 굉장히 좋아하셔서 4살 무렵인가? 그때부터 자주 들었다는걸 얼마전 밤의 가스파르를 듣고 겨우 알았어요;;
    역시 어릴때 받은 인상은 오래도록 남나봐요^^;
    차이코프스키와 하이페츠의 이야기도 감사합니다. 음.. 하지만 정말 그런 생각을해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굉장히 현악기에 어울린다고요. ^_^; 그래서 좋지만요
  • 샤키 2004/11/05 13:04 # 답글

    앗 밤의 가스파르 중 물의요정 저도 정말 좋아하는데...
  • anakin 2004/11/05 19:04 # 답글

    mayura 님 // 아..제 글들 챙겨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__) 라벨이라니 무척 어려운 음악으로 조기교육을 받으셨군요 :) 음..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모음곡 들어보면 관악기를 아주 재미있게 쓴 곡들도 많아요. 그의 다른 장르 음악보다 가볍게 들을 수 있기도 하고요..
    샤키 // 물의 요정이 무슨 곡이지? --a 근데 네가 좋아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피아노곡일듯.. ^^
  • 스머프매니아 2004/11/08 01:00 # 답글

    하이페츠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정말 좋은 연주죠...그냥 들어서는 잘 모를수도 있지만
    다른 연주랑 비교해본다면 달라지지요...
    다른 연주자들이 대충 연주하는것같은 부분에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 anakin 2004/11/08 08:52 # 답글

    스머프매니아 님 // 그것이 바로 하이페츠의 위대함이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확한 연주.. 빠른 패시지에서의 각 음표의 선명함은 정말 감탄 이외에는 할 말이 없죠.
  • 도혀니다 2004/11/11 14:26 # 삭제 답글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 anakin 2004/11/11 16:19 # 답글

    도혀니다 님 // 별말씀을요. 즐겁게 읽으신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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