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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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뜻밖의 여정 (2012) - 아니 확장판을 극장에 걸면 어떡하나요;;;

The Hobbit: An Unexpected Journey (2012)
감독: 피터 잭슨 (Peter Jackson)
작가: Fran Walsh, Philippa Boyens, Peter Jackson, Guillermo del Toro (스크린플레이), J.R.R. Tolkien ("호빗" 소설)
출연: 이안 맥켈런 (Ian McKellen), 마틴 프리먼 (Martin Freeman), 리처드 아미터지 (Richard Armitage), 켄 스톳 (Ken Stott), 이안 홀름 (Ian Holm), 일라이저 우드 (Elijah Wood), 휴고 위빙 (Hugo Weaving), 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 크리스토퍼 리 (Christopher Lee), 앤디 서키스 (Andy Serkis), 실베스터 맥코이 (Sylvester McCoy) 등
상영시간: 169분

(다음영화, IMDb 페이지)


이하 내용은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톨킨의 호빗. 제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4학년 정도였을 겁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앞 부분을 조금 읽어 주셨는데, 뒷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던 저는 점심 시간마다 선생님께 책을 빌려달라고 해서 혼자 꾸역꾸역 읽었고, 그대로 그 세계에 빠져 들어가 지금 이모양 이꼴(?)이 되었군요;;;

저에게 있어 호빗, 나아가 톨킨의 작품 세계가 갖고 있는 의미는 무척 큽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작년 12월 처음 개봉하고,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평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머릿속이 참 복잡했죠.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영화로 나왔을 때에, 영화는 무척 훌륭했고 제 예상보다 훨씬 큰 대중적인 호응도 받았지만, 그만큼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결에 원작과 다르게 만들어진 부분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부분은 영화의 훌륭함으로 인해 커버가 되었지만, 영화 자체가 별로였더라면 이러한 부분을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실제 보고 온 지금, 이점에 대한 제 생각은 어떻냐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발뺌하는 것 같아 좀 민망하지만, 3부작을 다 본 후까지 판단을 보류하려 합니다.

영화에는 호빗 원작에 없는 부분이 여기저기 들어가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호빗의 주인공인 빌보의 이야기의 호흡을 방해하고, 가뜩이나 느린 흐름을 더욱 느리게 합니다. 자꾸 비교를 하게 되는데, 반지의 제왕 3부작(이하 반지)에서는 소설의 곁가지를 효율적으로 쳐내고 가볍게 눈위를 달려가는 엘프의 느낌이라면, 호빗은 씹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입속에 잔뜩 쑤셔 넣고 양 옆구리에 또 커다란 훈제 햄을 끼고 뒤뚱뒤뚱 힘겹게 걷는 드워프의 느낌입니다.

"원래 호빗의 이야기도 해야 겠고, 동화인 원작을 그냥 전달하면 심심할테니 (반지에서도 그랬듯이) 없던 갈등 요소도 추가로 넣어야겠고, 근데 반지의 흥행을 좀 업으려면 소설에는 없지만 전작에 나온 배우들 카메오 출연 좀 시켜야겠고, 으악 러닝 타임이 턱없이 부족해, x발 삼부작으로 늘려!"

...이라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외치는 잭슨 감독이 막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습니다-_-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제 심정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니 이 사람들이 정말, 감독 확장판을 극장에 걸면 어떡하나요?!"


정리하자면, 소설에 없던 부분을 이렇게 잔뜩 쑤셔넣은 것이, 전체 이야기 구성의 구조를 어거지로 무너뜨리는 요소인지, 아니면 나름 전체적인 흐름에서 필요한 이야기가 될런지는 처음 1/3만 봐서는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지금 제 생각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봐서는 전자 쪽에 좀 더 가까운 듯 해서 살짝 걱정이 됩니다만... --a


그래서 영화가 재미가 없었냐고요? 아뇨, 무지 재미있게 보고 왔습니다! ^_^ 단, 왜 이 작품에 대해 이리도 안좋은 평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젠 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이하 영화에 대해 떠오르는 잡상을 순서 없이 늘어놓아 봅니다.

* 소설에서는 뭐 근엄 그 자체이고, 반지의 제왕에서도 대체로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나오는 갠달프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건 재미있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두 곳에서 이런 부분을 볼 수 있었는데, 호비튼에서 처음 출발할 때의 대화에서 갠달프는 다섯 명의 위자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가 그에게 묻습니다. "다른 위자드들은 당신과 달리 위대한 자가 있나요?" 그 때 갠달프의 벙찐 표정은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리븐델에서 있었던 백색 의회에서, 의회의 수장인 사루만이 갠달프의 말에 핀잔을 놓자 삐진 표정;;;으로 얼굴을 돌리던 갠달프의 모습 역시 근엄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사루만의 대사는 물론 반지 시리즈에서 그가 맡게 되는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겠지만요.


* 아, 의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맥켈런 경의 인터뷰 중 이 부분이 케이트 블란쳇(갈라드리엘)과 한 세트에서 촬영한 첫 장면이었다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반지에서 갈라드리엘이 갠달프와 함께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긴 한데, 마지막 회색 항구 장면에서 엘론드, 켈레본, 갈라드리엘이 배에 탑승하는 부분과 갠달프, 프로도가 탑승하는 부분이 바로 이어져 있지만, 촬영은 서로 별개로 하였나 봅니다. 이것이 바로 편집의 힘인가요...


* 다섯 명의 위자드에 대한 대화에 대해 조금 더 잡설을 늘어놓아 보면, 다섯 위자드 또는 이스타리(Istari, 단수형은 Istar)는 신들의 특명을 받고 미들-어스에 파견된 자들로, 백색의 사루만, 회색의 갠달프, 갈색의 라다가스트, 그리고 두 명의 청색 이스타리가 있죠. 갠달프는 그 둘의 이름을 기억 못하겠다고 하는데, 끝나지 않은 이야기 (Unfinished Tales)의 기록을 보면 그 둘의 이름은 알라타르(Alatar)와 팔란도(Pallando)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갖 지식의 보고인 갠달프가 함께 온 동료들의 이름 따위를 기억 못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요? 이는 영화 제작자들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내용을 영화에 사용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일 거라고 하네요 --a

이들이 미들-어스에 올 때의 뒷 이야기가 좀 더 있는데, 여기에 적어 봤자 아마 저만 재미있을 거 같아 생략합니다 -_-


* 갈색의 라다가스트 캐릭터는... 사실 원작에 그에 대한 디테일은 별로 나오지 않으니 영화 제작자들에게 상당한 자유가 주어지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정도까지 튀게 하는 것은 좀 아닌 거 같은데 말입니다. 토끼 썰매는 오크가 추격하는 (책에서는 물론 전혀 없는) 액션신 때문이라 해도, 그의 머리에 꼭 새x을 발라 놓아야 했는지 싶네요;;;

그리고, 영화에서는 네크로맨서의 검을 얻은 후 바로 갠달프 일행을 찾아오는 걸로 되어 있는데, 네크로맨서의 본거지인 돌 굴두르는 암흑숲(Mirkwood)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고, 갠달프 일행과 마주치는 곳은 리븐델에 가까운 곳이죠. 암흑숲은 푸른 산맥(The Blue Mountains)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리븐델은 푸른 산맥의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다가스트는 푸른 산맥을 토끼 썰매를 타고 그냥 옆집 놀러가듯 휙 넘어 온 건가요? --a 근래에 오크와 고블린으로 득실대기 시작하고, 밤에는 와르그(거대 늑대)들이 사냥을 다니고, 암석 거인들이 돌을 던지며 놀고 있고, 갠달프조차 독수리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건넌 그 험난한 푸른 산맥을?


* 근데 독수리들은 여기서도 여전히 대사가 없네요ㅠㅜ 이 거대 독수리들은 그냥 맹수가 아니라, 말을 할 수 있는 진화한 독수리 종족입니다. 그들의 수장은 바람의 제왕 과이히르(Gwaihir the Windlord)고요. 하긴, 반지에서 내내 "끼아아악" 정도의 소리밖에 못 내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좀 이상할 거 같긴 합니다;;;


* 13인의 드워프를 각각의 개성을 살려 관객이 모두 기억하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저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원작에서도 리더 소린을 제외하면 나머지 12인의 드워프 중 그나마 좀 개성이 있는 인물들은 가장 뚱보인 봄버 (근데 봄버는 영화에서는 대사 한 마디조차 없습니다?!), 가장 뛰어난 감시꾼 발린 (영화에서도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조언자 역할), 제일 젊은 탓에 온갖 잡일은 다 맡아서 하는 필리와 킬리 (영화의 킬리는 궁수로 맹활약!), 그 이외에는 그냥 뭉뚱그려 '나머지 드워프들'로 이야기해도 별 무리 없을 정도입니다. 원작이 이러니, 영화에서 이들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리라고 봐도 되겠죠.

하지만 영화에서 훌륭했던 것은, 이 '나머지 드워프들'에게 시각적인 개성을 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도, 외모의 개성 덕에 영화가 끝나갈 때 즈음엔 '아 그래 저렇게 생긴 애가 있었지' 정도는 각인시켜 주거든요. 이 정도면 뭐 한정적인 개성의 원작 캐릭터들을 무척 잘 처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앞 단락과 관련하여, 톨킨이 각 캐릭터의 개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무려 13명의 드워프를 굳이 포함한 이유는 뭘까요?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그냥 이름 부르는 재미;;;를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원작 호빗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였다는 것을 기억해 보죠. 위기의 순간마다 드워프들과 빌보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비퍼, 보퍼, 봄버, 필리, 킬리, 도리, 노리, 오리, 오인, 글로인, 발린, 드왈린, 소린"을 불러대는 장면은 원작에도 종종 등장하는데, 저 이름들을 소리내어 읽다 보면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 마련이죠 ^^a


* 이안 경이 반지에 나왔을 때보다 훨씬 나이들어 보여 참 가슴이 아펐습니다ㅠㅜ 그의 건승을 진심으로 빕니다!


* 이하 것들, 원작 호빗에서는 전혀 안 나옵니다!

- 모리아의 전투, 소린의 이야기: 이는 반지 소설의 부록에 기록되어 있고, 호빗에서는 안 나옵니다. 더불어...
- 소린과 아조그(Azog)의 불타는 나무 아래서의 1대1 결투: 애초에 아조그 자체가 안 나옵니다 --a 소설에서는 이미 죽었거든요 --a 모리아에서 도망친 오크들의 지도자 자리는 아조그의 사후 아들 볼그(Bolg)가 계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 프로도: 영화에서는 나이든 빌보가 과거를 회상하며 책을 쓰는 형식이 되어 있는 관계로 프로도도 나오지만, 원작에는 안 나오죠. 실제 프로도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 라다가스트와 관련된 모든 장면: 원작에서는 이름만 잠시 언급되고 실제 나오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는 반지의 제왕 소설에는 실제 등장하지만 영화에는 전혀 안 나오죠. 그 서러움이 여기서 좀 풀렸으려나 모르겠네요.
- 백색 의회: 곳곳에서 의회가 모였다는 것이 언급만 될 뿐, 당시 오간 구체적인 대사는 아마 기록이 없을 겁니다.
- 등등

묘하게도, 암석 거인들이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싸우는 장면은 소설에도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신은 아니고, 먼 발치에서 거인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장면이지만 말이죠.


* 반지에서 나오는 주요 인물 중, 이 시기(3시대 2941년)에 살아있는 엘프가 아닌 캐릭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생을 가진 엘프는 이미 오래 전에 다 태어나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아웬이 2700년 동안 살아 있었을 때입니다.

- 골룸(2440년 생), 김리(2879년 생), 빌보(2890년 생), 데네소르(2930년 생), 아라곤(2931년 생)

네, 로한의 왕 세오덴(2948년 생)조차 아직 태어나기 전의 일이에요.


* 원래 이 소감문은 정말 간단히 적으려 했는데, 위로 스크롤을 올려 보니 이건 뭐... -_-;;; 완전 실패했군요. 아는 (또는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얘기 한 번 나오면 입닥칠 줄 모르는 저의 고질병이 또 도졌군요.



* 그래서, 이제 2편 개봉까지는 어떻게 기다리죠?!??!!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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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남선북마 2013/02/03 00:57 # 답글

    블루레이를 모으는 입장에서.. 이 확장판(-.-)의 확장판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2편에서는 볼그가 카리스마있게 나오던데..아조그와의 관계는 어찌 처리할지..
  • anakin 2013/02/03 06:34 #

    남선북마 님 // 여기에 내용이 더 첨가된 확장판이 나오면 이건 호빗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덩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ㅠㅜ
  • eruhkim 2013/02/13 02:19 # 답글

    소감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제 경우 영화를 통해 톨킨의 작품 세계를 알게되었는데, 피터 잭슨 작품의 호빗이라 많은 기대를 했지만, 3부작은 조금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들게하는 1부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빨리 2,3부를 보고 싶네요.
  • anakin 2013/02/13 10:12 #

    eruhkim 님 // 잭슨 감독은 욕심꾸러기! 소설과 달리, 영화는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하는 시간적인 제한이 있는 매체라, 무조건 많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저도 어서 후속편이 보고 싶습니다 ^^a
  • 레자드리아 2013/02/14 01:29 # 답글

    우와...소설을 먼저 읽어보신 위대하신 분! 놓쳤던 걸 많이 알고 가요~
    반지의 제왕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저에게는 왠지 친절하게 느껴졌던 영화였는데 허리는 조금 아팠지만 ㅋㅋ
    역시나 원래 팬들에겐 표현의 과잉이 느껴지셨던 모양이에요.
    피터잭슨 감독 머리에 쥐가 났을 건 정말 확실해요 ㅋㅋ
  • anakin 2013/02/15 05:04 #

    레자드리아 님 // 호빗 자체만은 동화책에 가까우니 사실 위대할 것 까진 없어요 ^^a 제 감상문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FlakGear 2013/02/20 21:02 # 답글

    unexpected 가 아니라 Expension으로 바꿔야겟군요 ㅋㅋㅋㅋㅋㅋ
  • anakin 2013/02/21 07:16 #

    FlakGear 님 // 으하하하, 호빗: 확장된 여정에 이어 호빗: 스마우그의 확장된 폐허, 호빗: 또 확장된 시작,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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