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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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2009) - 기적은 이루어져요. 운명이니까.

Slumdog Millionaire (2008)
감독: Danny Boyle, Loveleen Tandan
작가: Simon Beaufoy (스크립트), Vikas Swarup (소설)
주연: Dev Patel, Freida Pinto, Saurabh Shukla, Madhur Mittal 등
상영시간: 120분

(IMDb 페이지)


이하 내용은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만, 국내에서도 미국에서도 모두 상영관에서 내렸으니 좀 걱정 없이 제 느낌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로, 알아서 보시기 바랍니다 :)



작년 말 이 영화로 인해 시끌벅적하던 걸 보았고, 올해 국내에서 개봉하면서 블로그가가 시끌벅적한 것을 역시 보았지만, 기회가 안 되어서 못 보고 있던 것을 정말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네요.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다소 높아져 있던) 기대만큼 대단한 작품은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두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등장 배우들은 (인도 출신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인도인, 그리고 감독은 영국인, 이제 다소 지겨운 감도 있는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신선했고, 보일 감독이 의도적으로 곳곳에 넣은 '볼리우드' 스타일은 새로웠습니다. 이게 가장 두드러졌던 점은 마지막 엔딩 크레딧, 이제 모든 어려움은 끝나고 모두 흥겨운 음악에 춤을 추며 마무리를 짓는 장면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의외로 이 영화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현재와 과거를 왔다갔다 하는 다소 특이하지만 이 영화의 특성 상 필수였던 편집은 재미있었고 (퀴즈 문제들이 자말의 일생동안 일어났던 중요한 연관 사건들과 동일한 시간 순서대로 출제되었다는 이상한 점은 논외로 하도록 하죠^^) 힘들고 괴로운 자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꼬맹이들의 맹랑한(?) 연기도 영화의 주요 감상 거리입니다. 자말의 형 살림의 꼬맹이 버전은 너무 성숙해서 다소 애늙은이 같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어른 버전 라티카가 기차역에서 위를 올려다 보며 미소짓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추고 라티카의 빛나는 얼굴만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



영화의 가장 약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하는 결말부, 결국 모든 것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가 되고, 살짝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단지 "운명이니까"라는 식으로 덮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영화 내내 보여준 자말의 고난과 역경의 끝은 그래도 좋은 결말로 만들어줘야 영화 전체가 너무 어두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어차피 영화 내내, (픽션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우연에 기대어 진행해 온 것을 고려해 볼 때에, 영화의 결말 또한 판타지다운 결말이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요. 덕분에, 너무 예측대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좀 아쉽긴 하지만요. 그래도 다들 해피 엔딩을 원하잖아요? 아닌가요? ^^a



이 영화의 퀴즈쇼 대박은 단지 소재 중 하나일 뿐이고, 결국 영화의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것은 자말의 사랑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자말이 퀴즈쇼에 나간 것도, 그 모든 퀴즈들을 맞출 수 있었던 것도,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를 안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운명이었기 때문이죠. 판타스틱한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슬럼독 밀리어네어!



하지만 그 이면을 생각해 보면, 자말이 성공할 운명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혹 실패할 운명이었더라면, 평생 차이 왈라로 일하면서 덧없는 어린 시절의 사랑을 애타게 찾기만 하다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니 조금 우울해집니다. 이런 스토리로도 영화 하나 충분히 만들 수 있을 듯 합니다. 너무 암울해서 인기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_-;;; 하지만 잘 만든 영화라면 저는 볼 겁니다 --a



P. S. 번역에 대한 잡담 한 마디.

영화를 보면 가장 처음에 자막으로 퀴즈가 하나 나오면서 시작합니다. 제가 국내 극장에서 보지 못해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네이버 영화 소개 페이지를 보니 이런 번역이 있더군요.

자말 말릭은 퀴즈쇼에서 상금 6억원이 걸려있는 최종 단계에 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A: 속임수로 / B: 운이 좋아서 / C: 천재라서 / D: 영화 속 얘기니깐(It is written)


퀴즈 원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IMDb Slumdog Millionaire FAQ)

Jamal Malik is one question away from winning 20 Million Rupees. How did he do it?

(A) He cheated
(B) He's lucky
(C) He's a genius
(D) It is written


(D)의 "It is written."을 "영화 속 얘기니깐"이라고 번역을 해 놓았네요.

사실 다소 생소한 표현이지만, 영화 내에서 사용되는 맥락을 보아, 저 말은 "운명이었다"는 말로 해석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저것을 "영화 속 얘기니까"라고 번역한 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저 번역을 하신 분은 영화를 과연 보기나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이야기한 영화를, 한방에 허무개그 영화로 만들어 버리는군요.

더불어, 파급력이 강한 네이버에 올라온 내용이다 보니 또 수도 없는 사람들이 퍼다가 자신의 감상문에 넣었고요.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저 번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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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무피리 2009/08/20 09:55 # 답글

    이 영화 저도 봤었는데, 보고나서 원작이 된 책을 읽었어요.
    저는 영화도 좋았지만, 책이 참 좋았어요. 영화만 놓고보면 영화도 참 좋은데,
    책이 원작이라는 걸 감안하면 좀 아쉽기도 하더라고요.

    기회가 되시면 원작이 되었던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영어로 된 건 아직이지만, 우리말로 된 책도 번역이 꽤 훌륭해요. :)
  • anakin 2009/08/21 02:35 #

    나무피리 님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원작 책이 어떤지 정말 궁금하네요. 구해서 읽어 봐야겠습니다 ^^
  • santana99 2009/08/21 08:03 # 삭제 답글

    저도 책 읽었는데 정말 재밌습니다. 어떻게보면 만화같은 이야기지만 가벼우면서도 몰입도가 대단합니다. 영화에서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던 인도 빈민층의 다양한 삶도 엿볼수 있었구요.
  • anakin 2009/08/22 03:56 #

    santana99 님 // 위시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마무리하면 바로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 2009/08/22 22:55 # 삭제 답글

    극장에서는 운명이었다 로 번역되었습니다만, 번역할 수 없는 중의문이 아닌가 합니다. ^^
  • anakin 2009/08/23 03:52 #

    헐 님 // 아뇨, 중의문이 아니라, 네이버에 올라온 건 *잘못된* 번역입니다. 극장에서는 제대로 번역이 된 것 같아 다행이네요.
    추가 설명을 좀 덧붙이자면, 영화 중간에도 저 말이 나옵니다. 자말이 마지막 퀴즈의 정답을 모른다고 하자, 사회자가 마지막 퀴즈를 포기할 거냐고 묻죠. 그러자 자말의 대답은 "But maybe, it is written, no?"라고 대답하며 문제에 도전을 하죠. 저걸 '영화니까'라고 번역한 것은 이 영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번역을 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 2009/08/23 04:13 # 삭제 답글

    아, 그렇습니다. 번역문이니까 하나만 취사 선택 해야한다면 운명이었다 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굳이 written이란 단어를 통해서 표현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어느 쪽으로 읽든 큰 상관없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니까 라고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영화면 어쩔꺼냐, 이런 좋은 이야기에서 그런 걸 따지고 있을 것이냐? 라는 메세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 anakin 2009/08/24 15:21 #

    헐 님 // 뭐, 해석은 다양하게 할 수 있을테니까요.
  • 잠본이 2009/08/26 00:37 #

    설사 헐님의 말대로 중의문이라고 해도 그렇게 깊게 생각할 정도는 아니고...
    '(대본에) 그렇게 적혀있다' 정도로 해석해야겠죠. 신의 대본이냐 인간의 대본이냐가 문제일 뿐.
  • anakin 2009/08/26 06:14 #

    잠본이 님 // 말씀대로, written이라는 동사에서 '영화'로까지 잇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adios 2009/09/02 15:18 # 삭제 답글

    전... 영화로니깐..이게 그냥 장난치는건줄 알았네요 ㅎㅎ

    운명이라... ^^ 그래야 영화 마지막과 딱 어울릴거 같은데요 ㅋㅋ
  • anakin 2009/09/03 03:20 #

    adios 님 // 네, '영화니까'라는 해석은 이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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