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드전기-아버지의 신분은?
2006년 개봉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게드전기에 대한 글입니다.

"이거 내린게 언제인데..."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 것만 같지만, 제가 그 동안 신분에 다소 변화가 있었던 관계로 진작에 쓰고 싶었던 글을 이제서야 쓰게 된 것에 대해 우선 너그러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태평양을 건너 왔더니만, 영화표 값이 꽤나 부담스러운 관계로 아직까지 '제일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가 게드전기인 상태라죠. --a

사실, 최근들어 검색어에 '게드전기'가 비교적 꾸준히 걸리기도 했고요.. :)


이미 개봉 당시에 논란이 되었던 점이지만, 다시 한 번 기억을 상기시켜 보자면, 우리의 주인공 아렌 왕자가 아리따운 테루양의 노래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되는 장면이 있죠. 이 부분에서 아렌의 일본어 대사는 분명 "나는 아버지를 죽였어"인데 자막에는 "나는 을 죽였어"라고 왜곡(?)되어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가 아니라;;; 국내 정서상 원 대사는 아버지에게 칼을 담그는 폐륜적인 내용인 관계로 그 내용을 살짝 바꾸었다는 설이 일반적이죠. 헌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렌의 아버지는 사실 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_-;;;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면, 원작에서 아렌의 아버지는 왕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왕자의 아버지는 왕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왕자(prince)라는 호칭은, 단지 왕의 아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왕자'라는 호칭이 의미하는 것은 사실 여러 가지가 있죠. (출처: Prince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왕자는 왕(monarch)의 아들이며, 직속 세자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왕자는 왕의 가족 구성원 중 남성인 사람, 그리고 가까운 친척 중 남성인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여성은 당연히 princess겠죠?) 뭔가 말이 길지만, 핵심은, 군주가 여성인 경우, 그의 배우자를 일컫는 호칭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좁은 의미 이외에도, 이 부분의 중간쯤에 보면 봉건 시대, 지역을 지배하는 영주 중 백작(count) 이상의 지위를 지닌 자들을 통틀어 prince로 호칭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니, 아렌이 과연 얼마나 높은 '귀족'이었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군요 ^^;;



그런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그의 아버지와, 그의 조상들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아렌의 아버지는, 엔라데스(The Enlades)로 통칭되는 엔라드(Enlad) 주변 지역 섬들의 통치자이지만, '왕'은 아닙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게드가 그를 일컬을 때 '엔라드의 왕자 (Prince of Enlad)'라고 이야기하죠.
"You are the son of the Prince of Enlad and the Enlades," the Archmage said, "heir of the Principality of Morred..."

"자네는 엔라드와 엔라데스 땅의 왕자의 아들이며, 모레드의 공국의 계승자로구나." 아크메이지는 이야기했다...

- The Farthest Shore 中


엔라드의 왕자는 왕족의 후손이며, 특히 '청년왕 (The Young King)'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모레드(Morred)의 직속 후손입니다. 엔라드의 모레드 왕의 자손들은 이후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하브너에서 그 세력을 떨치게 되죠. 그들이 지배하는 기간은 마을마다 도둑이 없고 바다에는 해적이 없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었고, 풍작으로 모든 이들이 행복한, 역사의 황금기였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렌과 게드의 모험이 있기 약 500년 전 쯤, 마지막 왕인 마하리온(Maharion)이 세상을 떠났고, 그의 죽음 이후 치열한 왕권다툼으로 인해 땅은 황폐화되고, 지역 군벌들의 세상인 암흑의 시대가 이어집니다. 그 암흑의 시대에 한 줄기 빛이 된 것이 바로 로크(Roke) 섬의 마법학교. '손 (The Hand)'이라 불리는 마법 연구와 교육에 대한 마법사들의 연합이 기반이 되어,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게 되고 9명의 분야별 마스터(Master)들과 한 명의 아크메이지가 다스리는 마법 학교가 됩니다.

왕이 사라진 어둠의 세상, 이들이 어느 정도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지만, 게드전기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마법이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등의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불안에 떨게 되고, 아크메이지인 게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크를 떠나게 됩니다.


어둠의 시대가 있으면, 어둠의 시대가 끝나는 날에 대한 '예언'이 으례 있는 법. 마지막 왕이었던 마하리온은 죽기 직전, 새로운 왕에 대한 예언을 남깁니다.
"He shall inherit my throne who has crossed the dark land living and come to the far shores of the day."

"살아있는 채로 어둠의 땅을 건너 머나먼 낮의 해변으로 온 자가 나의 왕좌를 이을 것이다."

- Tales from Earthsea 中


이 예언에서 이야기하는 어둠의 땅은,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죽음의 세계'로, 일반인은 절대 그냥 다녀올 수 없고, 아주 강한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는 마법사들도 어려워 하는 일이죠. 이 어둠의 땅은 원작에서는 3권 '머나먼 해변'에서 거의 절대적인 중요도를 지니고 있지만, 영화 게드전기에서는 생략되다시피 했습니다.



좀 옆길로 샜습니다만, 결론을 말씀드리면, 아렌의 아버지는 왕이 아닙니다. 왕의 후손이며, 엔라데스 영지를 다스리는 왕자일 뿐이죠. 아렌은 왕자의 아들로서 왕자 신분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에, 위의 한글 자막 번역은,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뭐, 게드전기에서는 왕으로 설정했다고 가정하면 간단히 해결되긴 합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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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kin | 2006/10/27 12:43 | 영화관련 멋대로 떠들기 | 트랙백 | 덧글(0) |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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