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기스트 저니 다시 플레이 중
이하 내용 중에는, 게임 롱기스트 저니(The Longest Journey)의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9년, 죽었다고 이야기되던 어드벤쳐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하였던 노르웨이의 개발사 펀컴(Funcom)의 작품 롱기스트 저니(The Longest Journey). 그 후속편 Dreamfall을 기다리며 요즘 다시 플레이 중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뒤늦게, 2005년이 되어서야 해 보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이 게임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찬사를 워낙 많이 들어서였습니다. 1998년 그림 판당고(Grim Fandango) 이후 PC 게임 쪽으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게 있어, 과거 명작 어드벤쳐에서 느꼈던 감동과 즐거움을 여기서 다시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한껏 안은 채 접하게 되었죠.


그러나, 너무도 큰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엔딩을 본 후, 그 엄청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플레이를 하며,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게임을 되짚어보며 진행중입니다. 몇 가지 단점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면요...


1. 너무도 많은 정보의 '강제' 주입
어드벤쳐를 즐기는 (저를 포함한) 많은 수의 사람들은 대화 하나하나에 목숨을 겁니다. 어느 대사에서 게임 진행에 중요한 힌트가 나올지 알 수 없으므로, 모든 대화를 보고 넘어가는 것은 철칙입니다.

그런데, 제 1장에서, 1층에 내려가서 피오나(Fiona)와 대화를 시작하면, 아니, 무슨 대화 내용이 이리 많은지요;;; 저는 게임을 즐기고 싶을 뿐, 에이프릴과 피오나의 과거사 수업을 들으러 온 것은 아니라고요. 그래도 혹시 필수 힌트가 있을까봐, 하나하나 다 눌러보고 가야하는데, 이는 참 고역이었습니다. Esc 키로 대사 스킵이 가능하지 않았더라면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는, 제작사의 정보 전달에 대한 능력 부족이 가장 큰 이유라 생각됩니다. 자신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세부적인 배경 설정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를 꼭 게임 초반에 몽땅 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가 나중에 '이러이러 했던 거야'라고 대화에서 언급할 수도 있는 거고, 그것도 아니면 아얘 dvd 영화의 서플먼트처럼 게임 외부로 빼버리는 것도 가능한 겁니다. 이를 하나하나 굳이 말로 설명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게임 중간, 코르테즈(Cortez)의 미션 브리핑;;;도 '지나치게 말로만 설명하려는' 것에 해당될 것 같고요, 토바이어스(Tobias)의 두 세계의 역사 강의 또한 여기에 해당되겠습니다.

'The Longest Journal'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겠죠?


2. 핵심 스토리를 잊게 만드는, 너무 복잡한 메인 퀘스트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면, 게이머가 중심되는 하나의 스토리를 늘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원숭이섬의 비밀(The Secret of Monkey Island)을 생각해 보면, 각 장에서의 목표가 명확합니다. 1장에서는 해적이 되는 것, 2장에서는 원숭이섬에 가는 것, 3장에서는 리척(LeChuck)을 찾아내고 일레인(Elaine)을 구하는 것, 4장에서는 결혼식을 막고 리척을 처단하는 것. 너무도 간단 명료한 목표를 따라갈 수 있게 되어 있죠. 하지만 롱기스트 저니에서는, 진행하다 보면 에이프릴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습니다.

코르테즈가 이야기하는 '임무'를 떠올려보면, 도대체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기억을 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한 가지를 완수하기 위해서, 너무도 많은 사이드 퀘스트에 압도되어 원 임무는 더욱 기억하기 힘들어 집니다. 가디언의 영역으로 가는 입구를 찾고, 들어가는 열쇠를 구성하는 네 개의 부품을 찾고, 실종된 가디언도 찾고, 밸런스(Balance)를 지키는 방법도 찾고... @_@

결국, 에이프릴은 이 복잡한 것을 하나씩 진행하게 됩니다. 뒤의 임무들은 사실상, 앞의 임무들이 끝난 후에나 고려하게 되죠. 그러니까 이 많은 임무들을, 게이머에게 한꺼번에 알려서 스트레스 주지 말고, 그냥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주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요? 코르테즈가 잡혀가서 안된다고요? 꼭 코르테즈가 직접 이야기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에이프릴에게 코르테즈의 비밀 메일이 와서, "네가 이 메일을 읽고 있다면 아마 나는 자유로운 몸이 아닐 것이네. 부품은 모두 찾았겠지? 이제 그 이후 임무를 알려주겠네. 어쩌고저쩌고..." 이러면 자연스레 다음 내용으로 이어질 수 있을테죠.

에이프릴의 명확하지 않은 임무는 스토리의 집중도를 크게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3. 일부 등장 인물의 지나친 욕설 난무
노르웨이에서 만든 작품이라 그럴까요? 여지껏 제가 즐기던 미국/영국에서 만든 어드벤쳐들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말을 쓰는 일부 등장 인물들은 게임의 몰입감을 크게 방해하고, 심지어는 불쾌감까지 주었습니다.

우선 대표적인 인물은 플리퍼 번즈(Flipper Burns). 처음 에이프릴을 만났을 때에 그녀에게 퍼붓는 욕설은 참으로 듣기 민망하고, 이런 놈과의 거래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게임 줄거리에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게임 진행은 해야 하니, 어쩔수 없이 대화는 열심히 다 눌러 볼 수밖에 없었죠.

이 인물로 끝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네버베이 선장(Captain Nevebay)도 무척이나 거슬리더군요. 말끝마다 왜 하필 모 신의 지저분한 부위에다가 맹세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인간은 더불어 전혀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핑계로 사사건건 에이프릴의 임무 진행을 방해하는데, 그의 존재는 단지 게이머의 삶을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닐런지 의심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의 말 하나하나가 제 신경을 거스른 것 같네요.


4. 주인공 에이프릴의 공감할 수 없는 행동들
미넬리(Minelli) 형사. 그가 대체 에이프릴에게 잘못한 것이 뭐길래, 그에게 못 먹을 걸 먹여서 배탈이 나게 하고, 그를 속여서 비밀번호까지 빼앗고, 심지어는 그의 인공 눈까지 빼앗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화이트 드래곤(The White Dragon) 호의 선원들과 툰 라이엑(Tun Luiac)은 무슨 죄를 지어서 침몰하는 배와 함께 그 운명을 달리해야 하는 걸까요? (네버베이 선장은 제외, 그는 죽을 짓 했습니다 -_-)

게임 진행을 위해서 이런 사악한 짓거리들을 하면서도, 에이프릴의 행동에 공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가 않고, 게임에 몰입도가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불만 사항만 늘어놓은 것 같네요. 하지만, 게임의 장점들은 이미 너무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제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그래픽, 거대하고 매혹적인 스케일의 배경 스토리, 독특한 유머 감각의 캐릭터들, 대체로 뛰어난 음성 연기,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인터페이스, 풍성한 대사, 스킵 가능한 게임 시스템, 간간히 나오는 다른 작품에 대한 패러디들, 등등, 장점을 늘어놓자면 정말 끝이 없습니다. (헥헥)

그리고 이러한 장점을 믿고, 저는 그 후속편을 별 망설임 없이 구매한 것이고요. :)


그래서 결론은... 드림폴 빨리좀 와라!!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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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kin | 2006/04/23 01:18 | PC 게임 | 트랙백 | 덧글(5) |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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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utena at 2006/04/23 20:11
유명해지기 전에 플레이해서 다행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만족말한만 엔딩은 아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근데.....그런 일들이 있었나요 내용이 하나도 기억 안나고 1층대화 너무 많았다는 기억이 나는군요. 쓸데없는 게 왜그리 많던지...그저 sidekick으로 나온 까만새덕에 그나마 유쾌했던듯도 합니다.
Commented by anakin at 2006/04/23 23:33
utena 님 // 워낙 내용이 기니까요. 저도 최근에 다시 플레이하면서나 차분히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크로우 재미있죠 ^^
Commented by 지한 at 2006/05/09 14:09
저도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어드벤처 게임이야말로 문학에서 소위 말하는 suspension of disbelief란 요소가 매우 심한 것 같습니다. 어드벤처 게임을 많이 하다 보면 그냥 그 마인드가 생겨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주인공의 행동들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직인 게 정말로 많죠. 일단 모든 어드벤처 게임의 모든 주인공은 다 몹쓸 "도둑놈"들입니다. (RPG도 마찬가지겠군요.) 말이 좋아 "아이템"이지 왜 맨날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은 일단 주머니에 넣고 보는 겁니까?
Commented by 지한 at 2006/05/09 14:09
비상식적인 행동들도 따지고 보면 한도 끝도 없지만 실제 상황에선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들을 많이 하게 되죠. 전혀 상관도 없는 물건들을 막 갖다 붙여서는 같지도 않은 조잡한 제3의 물건을 즉석에서 발명해내질 않나. 실생활에서는 그렇게 아이템 구하러 다니지 않죠. 가게에 가서 돈 주고 사면 되지.-_-; 이런 사소한 것들이 어드벤처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진입장벽이자 러닝 커브로 다가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위 어드벤처 게임 마인드로 무장하게 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죠. 상식을 버리고 비상식을, 논리를 버리고 비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셈이니까요.
Commented by anakin at 2006/05/09 17:26
지한 님 // 으음, 저는 '어드벤쳐 게임 안에서의 상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거의 의식을 못하고 있나 봅니다. 헌데, 롱기스트 저니에서는 (글의 3, 4번에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상에서 일반적으로 지켜지는 도덕성이나 상식, 예절에 다소 위배되는 것들이 보여서 다소 거슬렸던 것 같아요.
전에 PA 어디선가 읽었던, rope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어드벤쳐 게임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여 수도 없이 많은 곳에 등장하는 rope라는 아이템이, 현실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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