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 The Phantom of the Opera

Phantom: "It's over now, the Music of the Night!"

제가 종종 그렇듯, '순서를 거꾸로' 감상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자면 스타워즈 오리지널 에피소드보다 프리퀼에 먼저 빠져들었고, '창세기전 2 - 회색의 잔영'보다 '창세기외전2 - 템페스트'를 먼저 했다든지 등의) 예, 저 이 작품, 영화부터 봤어요. --a 영화 감상 당시에는 '이렇게 멋진 작품에 왜 그리 혹평이 많은건지'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뮤지컬을 감상한 지금은 '뮤지컬에 깊은 애착을 가진 분들이라면 혹평할 만 하구나'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흥은 아직 제 가슴속에 생생합니다.


영화와 뮤지컬을 비교하라 하신다면, 간단히 한 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음반 녹음본'과 '라이브 공연'의 차이.

좀 더 세세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음반 녹음본은 음정, 박자 등등에서 실수가 거의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다시 녹음하면 되고, 오늘날의 첨단 디지털 편집 기술을 총동원하면 새로 녹음한 부분을 원본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녹음본은 거의 연주자들의 최상에 가까운 기량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에 대비된 라이브 공연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확실히, 라이브의 경우, 연주자가 신이나 하이페츠;;가 아닌 이상, 작은 실수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것들은 곡을 아주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는 청중만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실수이기도 하고, 또는 곡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 방금 저거 뭐였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큰 실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녹음본이 절대 전달할 수 없는 현장의 생생함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연주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단순히 악기가 만들어내는 공기의 진동뿐만이 아니라, 연주자의 동작, 표정 하나하나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감정을 전달하려 하고 있는지, 녹음본만으로는 절대 100% 전달이 불가능합니다.

이것 뿐일까요? 연주는 단지 무대 위의 연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대 밖에서 숨죽이고 집중하며 무대 위의 사람들의 동작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펴보는 청중, 이들도 이 연주의 일부입니다. (이 개념을 가장 충실히 수행한 작품으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들 수 있겠네요) 이들은 연주 도중에는 연주자에 집중하며, 연주가 끝난 후 그들이 느낀 감흥을 박수로 표현함으로써 연주자에게 전달하게 되며, 그들의 공연에 참여하게 됩니다. 집에서 홀로 녹음본을 듣는 사람은 이 과정을 건너뛰게 되는 것이죠.


좀 옆길로 새어버렸는데요, 결국 말하고자 했던 것은 뮤지컬은 라이브 공연의 생동감과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영화는 실수는 없지만 생동감과 연주자들과의 공감이 결여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짧은 얘기를 너무 늘여서 했나요? --a


세부적으로 느낀 점을 몇 가지 더 추가하면요,

* 팬텀: 영화에서도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뮤지컬의 팬텀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영화의 팬텀이 완전 초라해 보일 정도였어요. 정말로 최고!! 마지막 구절을 부를 때 온 몸에 느껴지던 전율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 크리스틴 / 라울: 두 분 다 영화보다 힘이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아무래도 영화에서는 뮤지컬보다 '비주얼'이 중요하기에, 그 쪽도 중시한 캐스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확실히 영화의 크리스틴은 여리고 가냘프게 생겼고, 또 목소리도 그리하였죠. 헌데, 두 분의 듀엣 'All I ask of you'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음정 실수는 정말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ㅠ.ㅜ 하지만 크리스틴이 아버지를 그리며 부르는 'Wishing you were somehow here again'은 영화속 크리스틴의 가냘픈 음성보다 훨씬 감동적이었어요.

* 칼롯타: 영화의 '코믹한' 칼롯타는 아니었지만, 고음역의 노래 부분은 정말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셨습니다. 멋졌어요.

* 두 지배인 아저씨: 영화보다 대사도 오히려 더 잘 들리고, 무엇보다 코믹 터치가 영화보다 훌륭합니다 ^^ 너무 재미있었죠.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역시 칼롯타가 '두꺼비'화 된 후 발레로 땜빵하는 장면일 듯. :)

* 메그 지리: 스토리 초반, 크리스틴의 첫 데뷔 무대가 끝난 후, 크리스틴과 메그의 듀엣이 있죠. 이 부분, 상당히 안 좋았습니다. -_- 음정도 그렇고, 이 분 혹시 감기에 걸리셨던 건 아닐지...

* 오케스트라: 영화에서는 그 자취도 구경할 수 없는 비운(?)의 오케스트라. 물론 뮤지컬도 오케스트라 핏 속에 숨어 있어서 제대로 보기는 힘들지만, 제가 앉아있던 곳이 3층이었던 관계로 지휘자 님은 무지 잘 보였습니다. 작은 체구의 여자분이셨는데, 무척 날카로운 느낌의 의상과, 두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힘이 넘치는 지휘를 하시느라 참 힘드셨을 듯 싶군요.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연주까지 다 듣고 박수치고 나왔습니다. :) 아, 여담으로, 발레 부분의 플룻 주자님, 이 부분의 연주는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초감동!


시간/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보고 싶은 공연들이 참 많은데, 쉽지가 않군요. 그래도 이 공연은 놓치지 않고 본 것에 조금은 위안을 가져 봅니다.
by anakin | 2005/08/24 15:47 | 그 이외 감상문들 | 트랙백(1) | 덧글(6) |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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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테리 아지트 at 2005/08/28 13:44

제목 : 팬텀의 카리스마, 오페라의 유령
무대가 훤히 보이는 2층 가운데 자리에서 팬텀과 만나다 역시 대작은 대작이었다. 드라마적 요소보다 시각, 청각적 자극이 대단했다. 짧은 글로는 설명하기 힘든 내용이기에, 직접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쉽게도 오리지널팀 공연은 거의 끝나서 보기 힘들겠지만 다음 기회라는 것이 있으니깐 :) 제목에 걸맞게 크리스틴이나 라울보다는 팬텀에 집중되는 작품이었다. 또한 팬텀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된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아이러니지만 커튼 콜이었다. 차례로 인사를 한 배우들이 양쪽으로 나누어져 길을 만들......more

Commented by 아돌 at 2005/08/24 18:45
음.. 뮤지컬은.. 대체 어떻게 보는걸까요. ;;;
뭐.. 본적이 있어야.. 나는 미개인.. ;;;
Commented by anakin at 2005/08/25 09:52
아돌 님 // 보..보는거 자체야 표사서 가면 되지만요;;; 세상에는 다양한 취미와 취향이 있는 건데 뮤지컬 안보셨다고 미개인이라 하실것 까진 없을것 같아요^^
보통 뮤지컬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 내는 것이므로 달랑 보러 가기 힘드시다면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 본 후에 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유명 뮤지컬을 중심으로요.
비밀글 님 // 저도 진심으로 동감입니다. :)
Commented by 아돌 at 2005/08/26 02:56
훗. 보러갈 사람이 없습니다. 일부로 그러신거죠? -_-
Commented by anakin at 2005/08/26 10:57
아돌 님 // 헉;; 아돌 님 일부러 그런것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ㅠ.ㅜ
Commented by 테리 at 2005/08/28 13:42
저는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그 비교에 공감이 가네요
그리고 팬텀의 카리스마에는 다시 한번 한표! ^^

제가 본 공연에서는 발견한 실수는 없었어요
공연이 막바지라서 그런지 호흡이나 완성도면에도 멋졌어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anakin at 2005/08/29 14:41
테리 님 // 인간이다 보니 실수가 완전히 없기란 불가능하겠죠. 그리고 전체적으로 워낙 멋진 공연이다보니 그런 작은 실수들이 오히려 기억에 남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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