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푼트의 호숫가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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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교향곡 세 곡을 연주한 드레스덴

이름도 읽기 어려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Dresden Staatskapelle)"는 독일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최고의 교향악단입니다. 단, 여기서 최고는, 최고(最高)가 아니라 최고(最古)라는 것에 주의하셔야 하지만요. 1548년에 설립된 작센 궁정악단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역사가... 450년이 넘었군요 +_+
아, 물론 그들의 연주 기량도 세계 최고(最高)의 교향악단 중 하나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


1999년의 평화롭던 어느 날;;; 동아리에서 이들의 내한 공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화제의 초점은, 그들의 연주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었죠.

그들이 2000년도 1월 26일과 27일에 가졌던 공연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습니다. (튜브뮤직에서 예전 공연 자료를 찾았습니다)


* 1월 26일(수) 7:30 p.m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슈베르트, 교향곡 제 8번 "미완성"
Franz Schubert, Symphony No. 8 "Unfinished" in B Minor, D.759

모차르트, 교향곡 제 40번
Wolfgang Amadeus Mozart, Symphony No. 40 in G Minor, KV 550

베토벤, 교향곡 제 7번
Ludwig van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지휘: 주세페 시노폴리 (Giuseppe Sinopoli)


* 1월 27일 (목) 7:30 p.m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Felix Mendelssohn Bartholdy,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말러, 교향곡 제 5번
Gustav Mahler, Symphony No. 5 in C# Minor

지휘: 주세페 시노폴리 (Giuseppe Sinopoli)
협연: 김민진


이게 왜 이상한 것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살짝 부연 설명을 드리면요...


오늘날의 교향악단의 공연은 흔히 1부와 2부로 구성되며, 중간에는 쉬는 시간(인터미션이라고 하죠)이 있습니다.

1부에는 보통 두 곡을 연주하는데, 흔히 서곡 하나와 협주곡 하나를 연주하죠. 협주곡의 경우 솔로 악기(혹은 악기들인 경우도 있죠)의 화려한 기교가 주를 이루는 곡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에게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곡입니다. 또, 서곡은 보통 오페라 전에 오페라의 분위기를 전달해 주는 무겁지 않은 곡이죠. 교향곡에 비해 길이도 짧고, 또 원래 의도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곡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이 지나고 지각한 관객도 다 들어오면;; 2부에는 연주회의 메인 곡을 연주합니다. :) 이 메인 곡은 보통 교향곡입니다. 교향곡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나타라는 원래의 의미답게 오케스트라의 연주력과 기량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연주곡이기 때문이죠. 조화로운 현 5부의 앙상블, 목관의 아름답고 영롱한 소리, 금관의 강렬하고 힘찬 팡파레, 이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바로 교향곡입니다. 오케스트라를 '교향악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왜 연주회의 1부에서는 교향곡을 연주하지 않는 것일까요? 몇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교향곡은 보통 10~15분 내외인 서곡에 비해 평균 연주 시간이 25분~40분 정도로 훨씬 길이가 깁니다. 이는 연주 시간이 길어짐을 의미하죠.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시간이라도, 관객의 집중력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현명한 일은 아니겠죠? ^^ 게다가 교향곡 한 곡을 연주하는 데에 소모되는 연주자들의 체력 또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겠죠. (특히 낭만시대 후기의 교향곡들이 체력 소모가 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교향곡의 평균적인 난이도가 서곡이나 협주곡에 비해 훨씬 높은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연주회를 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연습해야 하고, 이는 주기적으로 정기 연주회를 하는 프로 오케스트라들의 일정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것이죠.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는데요, 간략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힘드니까

그렇게 안하는 것입니다. --a



이틀의 프로그램 중 둘째 날의 프로그램을 보면, 교향곡이 무려 말러입니다. 서곡 없이 연주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교향곡이죠.

헌데 첫 날의 프로그램은... 예 세 곡이 모두 교향곡입니다.

아무리 한 곡이 '미완성'이라고 해도...
아무리 한 곡이 모차르트 곡이라 해도...
아무리 세 곡 모두 후기 낭만 시대의 교향곡이 아니라 해도...

참 빡센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습니다! =_=


'미완성'. 비록 2악장까지밖에 없는 반쪽짜리 교향곡이라고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시적인 흐름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결코 가벼운 곡이 아닙니다. 또, 연주 시간도 약 25분에 육박하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이입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비록 베토벤의 그것에 비해 어느 정도 가벼운 느낌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40번 교향곡은 후기 교향곡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41개의 교향곡 중 단 2개 존재하는 단조 교향곡 중 하나로, 오히려 베토벤 1번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무거운 면이 있기도 하죠. 그리고 베토벤 7번은, 베토벤의 교향곡 중 '이름 있는' 곡들(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을 제외하고 가장 인기있는 곡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이 곡이 아주 힘이 넘치는 리듬감 있는 곡이기 때문이죠. 혹자는 이 곡을 일컬어 '리듬의 화신'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곡인 만큼, (특히 목관, 금관의) 체력 소모가 심한 곡입니다.


하지만 이 날 드레스덴의 연주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오히려 더 풍성하고 힘찬 소리를 들려주더군요. 특히 정신없이 달려가는 베토벤 7번의 4악장에서는, 지금은 타계하신 시노폴리의 제자리에서 점프하는 '펌프 지휘(당시 DDR과 펌프가 대유행이었습니다^^)'까지 선보이며 정말 숨가쁘게 몰아가는 흡입력 강한 연주를 보여 주었습니다.



으음... 아무리 그랬다지만... 하루에 교향곡 3개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에요. 다음 날 말러도 연주해야 했을텐데,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당시 자금의 압박으로 둘째 날의 연주는 보지 못했죠. 지금 생각해보니 참 아쉽네요...)


무대에서 세상을 떠나신 '진정한 지휘자' 시노폴리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며...

덧글

  • 김유정 2008/09/18 08:45 # 삭제 답글

    저도 같은 공연을 보았는데,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 검색하던 중 이 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보너스로 바그너의 리엔찌 서곡도 연주했지요.
    쓰신 글을 읽어보니, 정말 시노폴리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대단하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겠다 싶기도 합니다.
  • anakin 2008/09/19 02:21 #

    저도 덕분에 당시 공연의 감흥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어요^^ 저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앵콜이 리엔찌 서곡이었군요. 잊고 있었네요;;;
    정말 멋진 연주였는데, 이런 공연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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